이번 올림픽에서 야구와 핸드볼은 한편의 대서사시와 같았다. 아래는 그 내용을 요약하였다고 할까나.


야구 종가 미국과의 첫경기를 멋지게 장식하고. 결국 금메달까지 따낸 야구 대표팀은 9부작 드라마를 썼다. 보는 이를 공포에 빠지게 하는 스릴러였고. 눈물까지 떨구게한 진한 멜로였다. 9편을 몽땅 모아놓으니. 김경문 감독이 감독을 맡고. 24명의 선수가 모두 주연으로 등장한 초대형 블록버스트가 됐다. 동원관객 4300만으로 흥행도 대성공이었다. 심장 약한 사람 못 견뎠고. 가슴이 메마른 사람도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던. 역사적인 드라마의 메이킹 필름을 공개한다.

◇난데 없이 떨어진 ‘집합명령’

22일 일본과의 준결승 뒤 선수들은 하염 없이 울었다. 이용규는 아예 주저앉아 통곡했다. 23일 쿠바와의 결승을 앞두고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할만큼 했고. 이미 병역 면제 됐으니 선수들이 긴장을 풀 것이다’라는. 22일 밤. 쿠바와 미국의 준결승을 시청하고 난 뒤 진갑용. 김민재. 김기태 코치가 선수들을 집합시켰다. “WBC 때 예선 전승하고 좀 느슨해져서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정신 단단히 차리길 바란다”고 따끔하게 말했다. 진갑용은 “금메달 따면 돈이 얼마고?”라고 경제적으로 호소했고. 김기태 코치는 “이렇게 잘해놓고 지면 얼마나 억울하겠냐”며 마지막 투혼을 호소했다.

◇Low Ball. No Ball?

쿠바와의 결승전 9회 1사만루서 포수 강민호가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만루가 되던 시점. 강민호는 공을 받은 미트를 그대로 고정시킨 채 심판에게 무언의 항의를 했다. 심판이 욕설을 하며 공을 달라고 하자. “공이 낮았는가(Low Ball)”라고 물었더니. 심판이 퇴장을 명했다. 강민호는 “로볼을 ‘No Ball’(나 공없다. 또는 볼이 아니다)로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전부터 쿠바선수랑 심판이 자꾸 대화를 하더니. 나중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편파적이었다. 퇴장 명령을 받고 너무 화가나 글러브를 집어 던졌다.”

◇“아픈 표정이 아니잖아?”

쿠바전 6회 이용규가 다리에 볼을 맞고도. 사구 판정을 받아내지 못한 것도 어처구니 없긴 마찬가지. 한국이 항의하자 쿠바와 같은 라틴계인 푸에르토리코 심판이 “공에 맞았다면 아파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묵살했다고.

◇라틴동맹에 일본도 화났다

이날 결승전을 생중계하던 일본 TV 해설가들은 심판의 판정이 편파적으로 흐르자. “너무 심하다”고 하더니. 강민호가 퇴장당하자 “이건 말도 안된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경기가 끝난 뒤 한국 관계자들에게 “라틴계 심판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것부터가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한국팀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누드 인터뷰. 꿈보다 해몽

김경문 감독은 대회 직전 꿈얘기를 묻자. “꾸긴 꿨는데 다음에 말하겠다”고 했다. 금메달 획득 뒤 다시 물었더니 “좀 민망한데. 홀딱 벗고 인터뷰하는 꿈이었다. 주변에 알아보니 길몽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걸친 거 하나 없었냐’는 농담성 질문이 나오고. 김감독은 배시시 웃었다. 인터뷰실에서 ‘이길 때마다 하나씩 벗고. 9전승으로 다 이겼으니 하나 남은 것 없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금메달 인터뷰하고’라는 해몽이 나왔다.

◇숀 코널리. 나훈아? 예외 없는 징크스

해설을 맡은 SK 김성근 감독. 베이징 올림픽 한국선수단 김정행 단장. KBO 하일성 사무총장 모두 맨발로 다녔다. “처음 본 경기 이길 때 맨발이었던 터라. 쌀쌀할 때도 양말을 신지 못하겠더라.” 하일성 총장은 발톱도 깎지 않아. 맨발에 포인트를 줬다. 또 수염도 깎지 않았다. 허연 수염이 온 얼굴을 덮었다. “누군 숀 코널너 같다고 하고. 누군 나훈아 같다고 하더라. 계속 기를까?”

◇병상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 잎새

김동주는 금메달을 딴 뒤 울먹였다. 베이징으로 향하던 지난 10일 아내가 신장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상태가 좋지 않아 대표팀 출전을 포기하려했더니. 아내가 말리면서 “대신 금메달 따줘”라고 말했다. 대표팀 주포로. 후배들의 선배로 금메달의 일등공신이 된 그는 “아내와 약속을 지키게 됐고. 아내의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며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를 연상케했다.

◇‘파이팅하자!’메모의 진실은

22일 일본과의 준결승에 앞서 22타수 3안타로 거의 역적이 돼가던 이승엽은 일본전 선발로 내정된 김광현에게 게임 전날 오전 메모를 남겼다. ‘우리 파이팅하자!’ 이승엽은 24일 이렇게 밝혔다. “기분 전환할 겸 해서 일본전 앞두고 동료들과 쇼핑 하면서 모자 하나 샀다. 사고 났더니 어린 애들이나 쓰는 거였다. 누굴 줄까 고민하다가. 선수촌 1층에 있는 광현이 방이 보였고. 마침 광현이가 일본전 선발이라 침대에 모자를 놓고 나왔다. 그런데 누가 준건지 모를 것 같아. 파이팅하자고 메모를 남기고 내 사인을 써놨다”면서 “광현이가 뻥을 좀 친 모양이다. 어쨌든 호투에 도움됐다니 기분좋다”고 말했다.

◇“잠좀 자자!”

예선에서 부진한 이승엽의 마음은 누구라도 짐작하고 남을 일. 이승엽은 “하도 안맞아 ‘여기서 끝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면서 “그래서 타격감이 절정이던 후배 김현수에게 ‘너 어떻게 이렇게 잘 치니?’라고 묻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일본전 홈런으로 한숨 돌렸고. 금메달로 감격을 맛봤다. 메달 받은 직후 도핑검사를 한 뒤 뒤늦게 선수촌으로 돌아간 그는 “와~”라고 괴성을 질렀고. 다음날 경기를 위해 훈련을 마치고 늦게 잠든 마라톤 선수들이 창문을 열고 “나도 잠좀 자자!”라고 소리쳐 깜짝 놀랐단다.

◇정대현 뒤늦게 호출한 사연은

23일 쿠바와의 결승을 지켜봤던 이들은 9회말 정대현의 지각 투입에 대해 의아해했을 터. 김경문 감독은 24일 이에 대해 “이제야 말한다. 정대현의 허리가 좋지 않았다. 8회까지 류현진. 9회 정대현은 누가 봐도 깔끔하다. 그런데 정대현이 아파 고민이 컸다. 9회 만루 위기가 오고. 진갑용에게 물었다. 나는 윤석민을 쓰고 싶었는데. 진갑용이 정대현이 좋다고 해서 받아 들였다”고 밝혔다.

◇한기주 불쇼. 피치못할 사정

예선 때의 관심사는 한기주의 잇단 투입과 불쇼였다. 그런데 정대현의 비밀이 풀리면서 이 역시 명쾌하게 정리됐다. 김 감독은 “정대현의 허리가 좋지 않아. 어떻게든 한기주를 살려내야 했다. 그래서 계속 넣어서 자신감을 찾길 바랐던 것이다”며 “한기주로 인해 우리 선수들이 더욱 한덩어리로 뭉칠 수 있었다”고 정리했다.

◇김동주의 한마디. 박진만 자극

한국은 2-1로 앞서던 7회 한점을 뽑아 한숨 돌렸는데. 곧바로 7회말 동점을 내준 걸 보면 7회초 득점이 없었다면 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 득점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WBC를 통해 세계적인 유격수로 평가됐던 박진만은 이번 대회 준결승까지 안타 하나 뽑지 못했다. 쿠바와의 결승 두번째 타석까지도 무안타. 7회 세번째 타석에 앞서 김동주가 박진만에게 시큰둥하게 한마디 했다. “안타 한개는 치고 귀국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기분이 상했을까. 박진만은 우전 안타로 출루했고. 득점까지 했다.

◇쿠바전 송승준의 호투는 이렇게 탄생

이번 대회 주연급 조연중 하나가 송승준. 그의 엔트리 발탁과 관련해 뒤늦게 밝혀진 얘기. 대회 직전 사직에서 열린 두산-롯데전 때 손민한이 김경문 감독을 찾아 “승준이랑 저를 놓고 고민하신다면. 승준이를 써주세요.”

<사진 |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베이징 | 윤승옥기자 touch@

▽ 금메달 주인공들 코멘트

▲이종욱 = 말할 수 없이 기쁘다. 결승전에서 실수(막판 득점찬스 때 홈에 못들어온 것)를 해서 마음 아팠다. 긴장한 나머지 아웃카운트를 착각했다. 집에서 응원 많이 해준 어머니와 와이프가 고맙다.
▲고영민 =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마지막 순간이 기억 나지 않는다. 유종의 미를 거둬서 기쁘다. 사실 연장 들어가는 줄 알았다.
▲봉중근 = 금메달 만져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마운드 흙을 퍼서 물병에 담아왔다. 평생 보물로 간직하겠다. WBC 때보다 좋다.
▲김광현 = 부담은 컸지만 경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9승 하고 났더니 태극기 밖에 보이지 않았다.
▲김동주 =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무엇보다 와이프와의 약속을 지켜 기쁘다. 출국날 아내가 신장이 안좋아 입원했다. 대표팀에서 뛸까 말까 고민했는데 와이프가 금메달 꼭 따와 달라고 했다. 대표팀은 이제 은퇴하고 싶다.
▲이택근 = 선배들, 동주, 갑용, 진만, 승엽, 민재 등이 너무 잘해줬다. 병역이 걸렸있는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해줬다. 준결승에서 일본 이기고 나서 눈물이 났다.
▲이용규 = 너무 자랑스럽다.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많이 안좋았는데…. 미국전 이긴 뒤 자신감이 생겼다. 준결승 끝나고 나서 한없이 울었다.
▲ 정대현 = 쿠바전에서 슬라이더 3개를 던졌다. 2구째는 실투였다. 던지는 순간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3구째는 삼진 잡으러 갔는데, 상대가 당겨쳐 병살이 됐다. 박진만이 타구를 잡은 순간부터 종료 때까지 모든 순간이 파노라마로 구성됐다. 사실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류현진 = 완투를 하고 싶었는데 심판 판정 때문에 조금 아쉽다. 내려온 뒤 덕아웃에 있지 않고 라커룸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함성이 나길래 병살이 된 걸로 생각하고 뛰쳐나갔다.
▲진갑용 = 사형수가 형장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승의 순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함께 했던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한기주 = 선수들이 최선 다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동료, 선배들이 많이 격려해줬다. 큰 힘이 됐다. 국제 대회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내 볼에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단기전이라 좀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한 것 같다.
▲윤석민 = 올림픽을 정말 많이 기대했다. 처음 대표팀에 탈락했을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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