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즈 XP 팁 BEST 60 [1]

출처 : anijeong


 

1. 여러 파일 이름을 한꺼번에 바꾸자
윈도우즈 XP는 여러 개의 파일 이름을 한꺼번에 바꾸는 재주가 있다. 파일 형식이 서로 달라도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름을 바꿀 파일을 모두 고르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 다음 ‘이름 바꾸기’를 고른다. 윈도우즈 XP에서 여러 개의 파일 이름을 바꿀 때는 첫 번째 파일에 이름만 쓴다. 예를 들어 ‘PC사랑’이라고 하면 첫 번째 파일은 ‘PC사랑’이 되고 나머지 파일들은 ‘PC사랑 (1)’ ‘PC사랑 (2)’ 등으로 바뀐다. 만약 첫 번째 파일 이름을 ‘PC사랑 (10)’이라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PC사랑 (11)’ ‘PC사랑 (12)’이 된다.


새 이름을 쓰고 엔터 키를 누른 다음 이름을 바꾼 파일 다음에 있는 것들은 새 이름 뒤에 1부터 숫자가 붙는다.





2. 갑자기 재 부팅 되는 윈도우즈 XP 때려잡기

윈도우즈 XP는 너무 민감한(?) 나머지 프로그램에 조그만 오류가 생기면 저절로 재 부팅 된다. 물론 그 오류가 심각할 때도 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데도 PC를 재 부팅해서 이용자를 귀찮게 한다.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어도 시스템이 재 부팅 되지 않게 해보자. 바탕화면의 ‘내 컴퓨터’ 아이콘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누르고 ‘속성’을 고른 다음 ‘시스템 등록정보’ 창의 ‘고급’ 탭에서 ‘시작 및 복구’ 칸의 ‘설정’ 버튼을 누른다. ‘시스템 오류’ 칸에 있는 ‘자동으로 다시 시작’의 체크 표시를 없애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이제 윈도우즈 XP가 제멋대로 꺼지지 않는다.









3. 오류 보고 창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윈도우즈 XP부터는 프로그램들이 에러를 일으켰을 때 그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마이크로소프트사로 보고한다. 이런 오류를 매번 보고하는 것도 지겹고, 보고해도 해결되지 않으므로 오류 보고 창이 뜨지 않게 해보자. 시작 → 제어판 → 성능 및 유지 관리 → 시스템으로 간 뒤 시스템 등록정보 창이 뜨면 ‘고급’ 탭에서 아래에 있는 ‘오류 보고’ 단추를 누른다. 오류 보고 대화 상자에서 ‘오류 보고 사용 안 함’을 고르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4. 성인광고 나가 있어~

성인광고 사이트도 아닌데 자꾸 성인광고가 뜬다. 한두 개 정도야 바로 닫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여러 개의 창이 마구 쏟아져 나오면 윈도우즈 XP가 먹통이 되기도 한다. 성인광고를 막아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괜히 하드디스크 용량만 차지하므로 윈도우즈 XP 자체에서 해결하자. 인터넷 익스플로러 메뉴에서 도구 → 인터넷 옵션을 고른 다음 ‘일반’ 탭의 임시 인터넷 파일 항목에 있는 ‘설정’ 단추를 누른다. ‘설정’ 창이 뜨면 ‘개체보기’를 누른다. 탐색기가 뜨면서 파일 이름이 나온다. 이 중에서 sender control이라는 파일을 찾아서 지우면 성인광고 사이트가 뜨지 않는다.


‘개체보기’를 누르면 내 PC에 깔려있는 개체들이 보인다.







5. 내 컴퓨터에서 ‘공유 문서’ 없애기

윈도우즈 XP에는 여러 이용자가 같이 쓸 수 있는 공유 문서가 있다. 공유 문서에는 공유 그림, 공유 음악이 있는데 집에서 혼자 쓰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다. 용량만 차지하는 공유 문서를 지워보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를 띄운 다음,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Windows\CurrentVersion\Explorer\MyComputer\NameSpace\DelegateFolders에 있는
{59031a47-3f72-44a7-89c5-5595fe6b30ee}를 찾아 지운다.


이 레지스트리를 지우면 공유 문서가 보이지 않는다.





6. ‘시작’에서 문서메뉴 지우기
 
문서 메뉴가 있으면 작업 했던 문서를 쉽게 불러올 수 있지만, 길게 늘어져 있어 지저분하다. 문서 메뉴를 잘 쓰지 않는다면 깔끔하게 지우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Windows\CurrentVersion\Policies\Explorer 오른쪽에 마우스를 놓고 새로 만들기 → DWORD 값을 고른 뒤,
‘새 값’의 이름을 NoRecentDocsMenu 라고 바꾼 뒤 마우스로 두 번 눌러 값 ‘1’을 넣는다.


문서 메뉴가 없어졌다. 메뉴가 한결 깔끔해 보인다.











7. 바탕화면에 내 컴퓨터 불러오기

윈도우즈 XP를 깔고 나면 바탕화면에 휴지통만 보인다. 윈도우즈 98처럼 바탕화면에 기본 아이콘이 보이게 하려면 바탕화면에서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누른 뒤 → 속성 → 바탕화면 → 바탕화면 사용자지정을 차례로 누르고 ‘내 바탕화면에 아이콘’에서 골라 누르면 된다.




8. 휴지통을 변기통으로 바꾸자

다른 아이콘들은 이름을 바꿀 수 있지만, 휴지통은 ‘이름 바꾸기’가 없다. 하지만 PC사랑 사전에 불가능이 있던가? 휴지통 변기통으로 변신시키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LASSES_ROOT\CLSID\{645FF040-5081-101B-9F08-00AA002F954E}\ShellFolder의 오른쪽 창에 있는 attributes 키를 마우스 오른쪽 단추로 누른 뒤 ‘수정’을 고른다. ‘바이너리 값 편집’ 창의 ‘값의 데이터’ 칸에서 40 01 00 20 대신 70 01 00 20을 집어넣는다. CallForAttributes=dword:00000040 의 값만 지우자.


재 부팅하고 휴지통 위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이름 바꾸기’가 생긴다.









9. 입력 도구 모음 없애기
 
윈도우즈 XP ‘서비스 팩이 깔려 있다면 입력 도구 모음을 간단히 닫을 수 있지만 서비스 팩이 없다면 이것을 지울 수 없다. 입력 도구 모음은 한자를 입력할 때 편하지만 게임을 자주 하는 이들에겐 눈에 거슬릴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입력 도구를 쓰지 않는다면 이 방법으로 입력도구를 날려버리자. 제어판 → 국가 및 언어 옵션 → 언어 → 자세히 → 설치된 서비스에서 ‘추가’를 눌러 영어를 새로 넣는다. 그 다음 한글 입력기(IME2002)를 고르고 기본 설정 → 입력 도구모음에서 모든 체크를 끄면 도구가 사라진다.



10. 로그 온 할 때 예쁜 메시지 띄우기

회사, 학교 등 네트워크에 연결된 PC를 켜면 ‘로그온’ 화면이 뜬다. 이 곳에 톡톡 튀는 예쁜 메시지를 넣어보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WindowsNT\CurrentVersion\Winlogon을 찾는다. 오른쪽 창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뜨는 ‘새로 만들기’ 메뉴에서 ‘문자열 값’을 고른 뒤, 문자열 이름을 LegalNoticeText 라고 써 넣고 엔터 키를 누른다. 이미 있는 파일이라면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앞에서 만들어 놓은 문자열을 마우스로 두 번 누르면 ‘문자열 편집’ 대화 상자가 나타난다. ‘값 데이터’ 상자에 화면에 표시할 내용을 써 넣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같은 방법으로 LegalNoticeCaption 이라는 문자열 값을 만들고 ‘값 데이터’에 메시지 상자의 제목을 적은 뒤 ‘확인’ 버튼을 누른다. PC를 껐다 켜면 메시지 상자가 표시된다.




11. URL 입력은 단축 키로 간단히!

PC사랑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기사를 찾아보고 싶을 때 주소 창에 ww.ilovepc.co.kr을 모두 적지 않아도 된다. ilovepc만 쓰고 Ctrl+Enter 키를 누르면 http://www와 co.kr이 저절로 써진다. .com로 끝나는지, co.kr이나 net으로 끝나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 활용하면 편하다.




12. ‘드라이버가 맞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떠요!

윈도우즈 XP의 기본 드라이버를 쓰다가 부품 회사에서 만든 드라이버를 깔려고 하는데 ‘호환성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메시지가 종종 뜬다. MS가 테스트하지 않아 성능을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많은 드라이버가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지만 쓰는 데는 이상이 없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를 굳이 띄울 필요가 없다.
‘내 컴퓨터’를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누르고 ‘속성’을 고른 다음, ‘하드웨어’ 탭에서 ‘드라이버 서명’을 누른다. 여기서 ‘무시’를 고르면 다시는 호환성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


‘무시’를 고르면 드라이버를 깔 때 호환성 여부를 묻지 않는다.






13. 시스템 복원이 컴퓨터를 느려지게 한다?

‘시스템 복원’은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시스템 내용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오류가 발생하면 사고가 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파일을 읽고, 쓰고, 지울 때마다 system volume information 폴더에 시스템 복원용 백업 파일이 저장된다. 이 때문에 PC 속도가 느려지는데, ‘시스템 복원’을 끄면 속도가 한결 빨라진다.
‘내 컴퓨터’ 아이콘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으로 누르고 ‘속성’을 고른다. 시스템 등록정보’ 창이 열리면 ‘시스템 복원’ 탭을 누른 다음 ‘시스템 복원 사용 안 함’을 고르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된다.


시스템 복원을 끄면 PC가 한결 빨라진다.







14. 하드가 이유 없이 데이터를 읽을 때는?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는데 드르륵~ 거리며 하드디스크를 읽는 소리가 난다. 본체의 HDD LED도 깜박인다. 왜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은 하드디스크가 작동을 할까? ‘인덱싱 서비스’ 때문일지 모르므로 이 명령을 끈다. 인덱싱 서비스는 하드에 있는 파일을 정리해 빨리 뜨게 해주지만 명령을 꺼도 PC를 쓰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제어판 → 관리도구 → 서비스 → indexing service → 속성 → 사용안함을 누른 뒤 재 부팅하면 하드가 잠잠해진다.




15. 바탕화면 단축 아이콘에서 화살표를 지우자

프로그램 파일과 단축 아이콘을 구분하기 위해 단축 아이콘에는 ‘화살표’가 붙어 있다. 알아보긴 쉽지만, 왠지 지저분해 보인다. 화살표를 지우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LASSES_ROOT\lnkfile를 고른 뒤 오른쪽 창에서 → isshortcut를 지우면 된다.



화살표가 없어 아이콘이 깔끔하게 보인다.














16. 폴더 창을 재 빨리 연다.

탐색기에서 폴더를 이동하다보면 폴더 안에 있는 파일을 읽어 들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가 많다. 느린 속도 때문에 답답할 때는 다음과 같이 해보자. 시작 버튼 → 설정 → 제어판 → 폴더옵션을 차례로 고른다.
‘보기’ 탭의 ‘고급설정’ 칸에서 ‘폴더 및 바탕화면 항목에 팝업 설명 표시’ ‘압축된 파일과 폴더를 다른 색으로 표시’ ‘독립된 프로세스로 폴더 창 실행’ ‘네트워크 폴더 및 프린터 자동 검색’ ‘폴더 팁에 파일 크기 정보 표시’의 체크 표시를 없앤다.


이렇게 해두면 폴더 창이 조금 더 빨리 열린다.








17. 윈도우즈 XP에서 도스 게임 하기

윈도우즈 XP는 32비트 운영체제여서 16비트 도스 게임을 누르면 실행이 되지 않고 창이 꺼져 버린다. 도스 게임을 하고 싶다면 VDM(virtual DOS machine)이란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깐다. exe 실행파일을 골라 오른쪽 마우스 단추로 메뉴를 부른 뒤 run with VDMS를 누르면 된다. VDM은 PC사랑 홈페이지 ‘프로그램 타입 캡슐’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윈도우즈 XP에서 추억이 담긴 게임을 즐겨보자.



18. 메신저로 파일을 받을 수 없다고?
윈도우즈 XP는 인터넷 연결 방화벽 설정 부분이 있어서 외부에서 내 PC로 접속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메신저나 P2P 프로그램을 쓸 때는 이 방화벽 때문에 서로 자료를 주고받지 못한다. MSN 메신저를 비롯해 메신저가 P2P 프로그램으로 자료를 주고받을 때 방화벽이 가로막으면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바탕화면의 ‘네트워크 환경’의 ‘속성’을 연 다음 ‘로컬 영역 연결’을 한번 누른다.
마우스 오른쪽 단추를 눌러 ‘속성’을 연 뒤 고급 → 인터넷 연결 방화벽을 끈다.


인터넷 연결 방화벽을 끄면 메신저나, P2P 프로그램을 문제없이 쓸 수 있다.









19. 윈도우즈 XP에서 디스크 검사를 하자

윈도우즈는 문제가 있을 때 ‘디스크 검사’를 해 오류를 고친다. 하지만 윈도우즈 XP는 윈도우즈 98과 달리 ‘디스크 검사’ 메뉴가 따로 없다. 보조프로그램에 등록 되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디스크 검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 컴퓨터 → 로컬 디스크(c:)를 오른쪽 마우스로 메뉴를 불러 ‘속성’을 누른다.
‘도구’ 탭에 가면 ‘디스크 검사’가 있다. 모든 창과 프로그램을 다 끄고 검사하도록 한다.


윈도우즈 98보다 메뉴가 간단하고 검사가 빠르다.









20. 지워도 보이는 프로그램 지우기

안 쓰는 프로그램을 제어판 → 프로그램 추가/제거에서 지우지 않고 탐색기로 폴더만 지우면 프로그램 목록에 남는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프로그램 설치가 안 되고, 윈도우즈까지 느려진다. 흔적이 남지 않게 깔끔하게 지워보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Windows\CurrentVersion\Uninstall에 들어가 지울 프로그램을 골라 지우면 된다


2004/06/29 20:08 2004/06/29 20:08

윈도우즈 XP 팁 BEST 60 [2]

21. 시스템 종료 창 바꾸기
여러 이용자가 하나의 PC를 쓸 때 시스템을 켜면 시작 화면이 뜬다. 여기에는 각 이용자가 등록되어있고 누가 어떤 프로그램을 쓰는지 간단히 나와 있다. 내가 무엇을 할지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다면 윈도우즈 98처럼 이름만 보이므로 보안이 더 낫다. 윈도우즈 98처럼 바꿔보자. 시작 버튼 → 설정 → 제어판 → 사용자 계정을 고른 다음 ‘사용자 로그온 또는 로그오프 방법변경’을 누른다. ‘새로운 시작 화면 사용’의 체크 표시를 없애고 ‘옵션 적용’ 버튼을 누르면 로그 창이 고전적인 형태로 바뀐다.


‘새로운 시작 화면 적용’을 누르면 윈도우 98처럼 시스템 종료 창이 바뀐다.



22. 꼭꼭 숨겨진 윈도우즈 XP 관리 프로그램들

윈도우즈 XP의 시작 버튼 → 실행을 누르면 ‘실행’ 창이 열린다. 여기에 명령을 써넣으면 작업이 바로 실행된다. ‘실행’ 창에 쓸 수 있는 명령어와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compmgmt.msc 컴퓨터 관리와 관련 시스템 도구 창을 연다. diskmgmt.msc 디스크 관리 창을 띄운다. eventvwr.msc 윈도우즈 메시지가 담긴 이벤트를 본다.
gpedit.msc 도메인 또는 액티브 디렉토리나 PC에 저장되어 있는 조직 단위에 연결된 그룹 정책 개체를 편집하는 ‘로컬 컴퓨터 정책’을 연다. perfmon.msc 시스템 성능을 감시하고 로그와 경고를 기록한다. secpol.msc ‘로컬 보안설정’을 열어 도메인의 PC 보안 정책을 정의하게 도와준다. devmgmt.msc 하드웨어 장치 목록을 보고 각 장치에 대한 특성을 정하는 ‘장치관리자’ 창을 연다. dfrg.msc ‘디스크 조각모음’ 창을 연다. fsmgmt.msc 공유 폴더를 띄운다. lusrmgr.msc 로컬 이용자를 확인한다. rsop.msc ‘정책의 결과 집합’ 창을 연다. services.msc ‘서비스’ 창을 띄운다.




23. 메뉴를 빨리 빨리

제원이 낮은 PC를 쓰고 있다면 창이 뜰 때 나타나는 갖가지 효과를 없애 창을 빨리 띄워보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URRENT_USER\ControlPanel\desktop에서 MenuShowDelay을 살펴보면 400
으로 되어있다. 이 값을 0으로 고쳐주면 된다.


0으로 바꾸면 메뉴가 빨리 뜬다.





24. 하드디스크 파티션 하기

윈도우즈 98에서는 ‘fdisk’라는 프로그램으로 하드디스크를 나눠 썼다. 윈도우즈 XP는 이 fdisk프로그램이 없어진 대신 파티션을 쉽게 할 수 있는 메뉴가 생겼다.
시작 → 설정 → 제어판 → 관리도구 → 컴퓨터 관리 → 디스크 관리에 들어가면 하드디스크의 갖가지 정보가 뜬다. 파티션 하려는 하드디스크에 오른쪽 마우스를 눌러 메뉴를 불러온다. 파티션 뿐 아니라 하드디스크를 매만질 수 있는 갖가지 메뉴가 있다.


윈도우즈 XP는 복잡한 하드디스크 파티션을 간단히 끝낸다.






25. 내 PC 시각이 맞지 않을 때

작업 표시 줄 오른쪽에 있는 시계를 1분 1초도 틀리지 않게 맞춰보자. 먼저 작업 표시 줄의 시계를 누르고 ‘인터넷 시간’이란 탭을 누른다. ‘인터넷 시간 서버와 자동으로 동기화’를 체크하고 ‘지금 업데이트’를 누르면 된다.


인터넷 서버에 있는 정확한 시계와 연결되어 제대로 된 시간을 보여준다.




26. 회사 이름과 이용자 이름 바꾸기

윈도우즈 XP를 처음 깔 때 넣었던 회사 이름과 이용자 이름을 바꾸고 싶다면, 레지스트리를 매만지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Windows NT\CurrentVersion 에 들어가면 RegisteredOrganization과 RegisteredOwner라는 값이 있다. RegisteredOrganization은 회사 이름, RegisteredOwner는 사용자 이름이다.
입맛에 맞게 바꾼 뒤 재 부팅하면 바뀐다.




27. CD롬 자동 삽입 통지 막기

윈도우즈 XP는 윈도우즈 98처럼 ‘자동 삽입 통지’ 메뉴가 없다. CD롬을 넣으면 CD롬 내용이 알아서 뜨는데, 이 기능이 귀찮다면 레지스트리를 만져 끄면 된다.
시작 → 실행에서 regedit 라고 쓰고 엔터 키를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001\Services\Cdrom에서 Autorun값을 `0`으로 하면 CD를 넣어도 CD가 자동 실행되지 않는다.




28. 인터넷 화면이 제대로 안보일 때

인터넷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화면이 제대로 뜨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인터넷을 띄우면 그 사이트에 맞는 개체가 깔리는데, 이 개체가 제대로 깔리지 않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제어판 → 인터넷 옵션 → 일반 탭에서 임시 인터넷 파일의 ‘설정’ 메뉴를 찾는다. ‘개체 보기’를 누르면 내 PC에 깔려 있는 갖가지 개체들이 보인다. <Ctrl + A> 키를 눌러 ‘전체 선택’을 한 뒤 Del 키를 눌러 지운다. ‘예’를 누르면 말끔히 지워진다. 다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개체가 깔리기 전에 ‘예’ ‘아니오’라는 창이 뜬다. ‘예’를 누르면 개체가 바로 깔려 인터넷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예‘를 눌러야 화면을 띄우는 데 필요한 개체가 깔린다.




29. ‘도움말 및 지원’ 메뉴 지우기

윈도우즈를 쓰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도움말’을 보지만 사실 별 도움이 되진 않는다. 차라리 이것을 없애면 프로그램이 띄울 때 조금 더 빨리 뜬다.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Windows\CurrentVersion\Policies\Explorer에 간 뒤 ‘새로 만들기’ 에서 DWORD값을 만든다.
이름을 NoSMHelp으로 하자. 마우스를 두 번 눌러 데이터 값을 불러와 ‘1’이라고 넣자.
재 부팅 하면 ‘도움말 및 지원’ 메뉴가 뜨지 않는다.




30. 쓰지 않는 MSN 익스플로러 지우기
윈도우즈 XP를 처음 깔면 MSN 익스플로러가 깔려 있다. MSN 익스플로러는 MSN과 핫메일을 쓰는 사람에게 유용한 프로그램이지만 쓰지 않는다면 이 프로그램을 지워 하드디스크 용량을 늘이자. 시작 → 모든 프로그램 → MSN Explorer 아이콘에 마우스를 갖다 댄다. 오른쪽 마우스 버튼으로 메뉴를 불러와 속성을 누른다. 등록정보 창이 뜨면 ‘대상 찾기’를 누른다. Setup 폴더를 열어 보면 msnunin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이 MSN Explorer을 지우는 프로그램이다. 마우스로 두 번 눌러 시작 메뉴에 있는 내 PC에서 MSN 익스플로러를 지운다.


꼭꼭 숨어 있는 이 파일을 누르면 MSN 익스플로러가 지워진다.




31. 종료 로고만 뜨고 전원이 안 꺼질 때

‘시스템 종료’를 누르면 ‘이제 시스템 전원을 끄셔도 됩니다’라는 창만 뜨고 꺼지지 않는 일이 있다. 이럴 때 제어판 → 전원 옵션 → APM 탭으로 들어가 ‘최대 절전 모드 사용’을 체크하면 된다.





32. CD를 굽고 있는 도중 PC가 먹통이 될 때

주로 4배속 아래의 낡은 CD-RW 드라이브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 제어판 → 시스템 → 하드웨어 탭의 ‘장치 관리자’로 들어간다. IDE ATA, ATAPI 컨트롤러를 눌러 광학 드라이브가 꽂힌 보조 IDE 채널을 두 번 누른다. 전송모드가 DMA로 되어 있다면 PIO로 바꾼 뒤 적용을 누른다.

PIO 모드로 바꾸면 오래된 CD-RW라도 CD를 척척 구워낸다.





33. 640 × 480 해상도로 띄우기

윈도우즈 XP 제어판 → 디스플레이 등록정보를 보면 800 × 600이 가장 낮은 해상도로 되어 있지만, 640×480 해상도를 불러 올 수 있다. 제어판 → 디스플레이 → 설정의 ‘고급’ 단추를 누른다. ‘어댑터’ 탭에 들어가면 아래에 ‘모든 모드 표시’라고 되어있다. 이곳을 누르면 640×480 해상도에 256 컬러로 바꿀 수 있다.


256 컬러가 아니면 뜨지 않는 고전 게임을 즐길 때 좋다.





34. 바탕 화면 보기 아이콘 만들기

바탕화면 보기 아이콘은 모든 창을 최소화 시킬 때 편하다. 이 아이콘을 실수로 지웠다면 당황하지 말고 새로 만들어보자. 시작 → 보조프로그램 → 메모장을 열어 다음과 같이 쳐 넣는다.

[Shell]
Command = 2
IconFile=explorer.exe,3
[Taskbar]
Command=ToggleDesktop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고른 뒤 ‘바탕화면보기.scf'라고 저장하면 끝난다.


저장한 파일은 작업 표시 줄의 ‘빠른 실행’ 안에 끌어다 놓자.







35. 메신저 광고 메시지는 이제 그만!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지 않았는데도 MSN 메신저를 통해 스팸 쪽지가 계속 날아온다. 이것은 사실 MSN 메신저와 아무 상관이 없다.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은 무작위로 IP 주소를 뽑아 윈도우즈 NT 계열의 기본 서비스인 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해 광고성 쪽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 쪽지를 받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이 한다.
제어판 → 관리도구 → 서비스 → Messenger에서 시작 유형을 ‘시작 안함’으로, 서비스 상태를 ‘중지’로 하면 된다.


이제 지긋지긋한 스팸 메시지가 오지 않는다.







36. 윈도우즈 포맷하기 전, 즐겨찾기 백업은 필수

윈도우즈를 포맷하고 다시 깔고 나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즐겨찾기 사이트를 일일이 다시 등록하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즐겨찾기가 저장되는 디렉터리만 알고 있으면 이런 노가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윈도우즈를 포맷하기 전에 c:\documents and settings\이용자 이름\favorites를 통째로 다른 드라이브에 복사해 놓자. 윈도우즈를 다시 깐 뒤 같은 디렉터리로 복사한다. 인터넷의 즐겨찾기를 열면 고스란히 사이트가 들어있다. 하지만 전에 저장했던 순서까지 그대로 열리는 것은 아니므로 약간 손봐야 한다.




37. 하위 폴더를 재 빨리 연다

하위 폴더를 열려면 현재 폴더를 마우스로 두 번 누르거나 그 옆에 있는 +를 고른다. 따라서 디렉토리가 여러 단계로 되어 있으면 필요한 것을 열기위해 이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맨 아래에 있는 것을 단 한번에 여는 방법이 있다.
작업하려는 폴더를 고른 뒤 숫자 키보드에 있는 * 키를 함께 누르면 아래에 있는 모든 폴더가 열린다.




38. 지운 파일 되살리기
탐색기나 내 컴퓨터에서 실수로 중요한 파일을 지우기 십상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도구 모음에 있는 ‘실행 취소’ 버튼을 누르면 사라졌던 것이 다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축 키는 <Ctrl + Z>다.


‘실행취소’ 버튼을 누르면 방금 전 내린 명령이 무효가 된다.





39. 파일 이름이 안 바뀌네?

아무 작업도 하지 않는데 파일 이름이 안 바뀔 때가 있다. 이럴 때 재 부팅하지 않고 이름을 바꾸는 법을 살짝 공개한다. 파일을 고른 뒤 오른 쪽 메뉴를 불러와 ‘속성’을 누른다. 이 곳에서 이름을 바꿔보자 안 바뀌던 파일 이름이 손쉽게 바뀐다.


파일 복사 중이면 이 방법을 써도 바뀌지 않는다.


 

 

 

40. 내가 원하는 시각에 PC 끄기


시작 → 실행에서 ‘tsshutdn 시간(초)’을 넣자. PC를 1분 뒤에 끌 거라면 tsshutdn 60, 1시간 뒤에 끌 거라면 tsshutdn 3600이라고 넣으면 된다. 시간이 되면 바로 종료 되는 것이 아니라 만약을 위해 30초를 더 센다.

취소하려면 꺼지기 전에 <Ctrl +C> 키를 누르면 된다.

 

 

 


2004/06/29 20:04 2004/06/29 20:04

윈도우즈 XP 팁 BEST 60 [3]

41. 한글 자판 먹통 됐을 때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갑자기 한글 자판이 안 먹힐 때가 있다. 이럴 때 PC를 재 부팅 하지 말고 간단하게 해결하자. 대부분 왼쪽 Alt를 한번 누른 뒤 한/영 키를 누르면 한글로 바뀐다. 이 방법이 안 되면 왼쪽 <Shift + Alt> 키와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 뒤 한/영 키를 누르면 된다.


42. 윈도우즈 XP의 숨겨진 복사 재주


파일을 복사할 때 같은 파일이 있으면 겹쳐 쓸 것인지 물어보는 창이 뜬다. 모두 겹쳐 쓸 때 ‘모두 예’라는 항목은 편하지만, 겹쳐 쓰지 않고 이어서 복사하려면 ‘아니오’를 일일이 눌러야 된다. 이럴 때 중복된 것만 빼고 복사하는 ‘모두 아니오’가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윈도우즈 XP는 이런 재주가 숨겨져 있다. Shift 키를 누른 상태에서 ‘아니오’를 눌러보자. 똑같은 파일은 건너뛰고 복사 되지 않은 파일만 복사된다.

 


많은 파일을 복사할 때 편하다.

 

 


43.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름 바꾸기


인터넷 창 타이틀 맨 윗부분을 보면 Microsoft Internet Explorer란 꼬리표가 달려있다. 이 꼬리표 이름을 내맘대로 바꿔보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Internet Explorer\Main를 찾은 뒤 편집 → 새로 만들기 한 뒤 Window Title 이라고 써 넣는다. 만들었다면 왼쪽 마우스 단추를 두 번 눌러 이름을 써 넣는다. PC를 재 부팅하면 이름이 바뀐다.

 



인터넷 창 위에 있던 Microsoft Internet Explorer란 글자를 내 맘대로 바꾸었다.

 

 


44. 시작 페이지 고정하기


인터넷을 하다 보면 성인사이트가 첫 페이지로 뜨는 일이 종종 있다. 인터넷 옵션에서 홈페이지를 바꿔도 계속 뜨는 사이트가 정말 짜증난다. 레지스트리를 매만져 이런 문제를 말끔히 털어버리자. 시작 → 실행에서 regedit 라고 쓰고 엔터 키를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LOCAL_MACHINE\Software\Microsoft\InternetExplorer\Main,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InternetExplorer\Main으로 가서 둘 다 Start_Page 의 값을 처음에 띄우려는 페이지 주소로 바꾼다. 그 다음 왼쪽 창 Main 에서 오른쪽 클릭 ‘사용 권한’ 고른 뒤 쓰고 있는 계정을 고른 다음 밑에 고급 → 편집을 누른다. 값 설정에서 ‘거부’에 체크 하면 끝난다.

 


이 곳에서 사이트 이름을 바꾼다.

 

 


45. MSN 메신저 6의 숨겨진 이모티콘들


MSN 메신저에는 재미있는 이모티콘이 들어 있다.
메신저를 띄운 뒤 이 단어들을 채팅창에서 쳐 넣으면 재미있는 이모티콘이 뜬다.
(st) = 비
(%) = 수갑
(pl) = 접시
(ci) = 담배
(li) = 번개
(tu) = 거북이
(xx) = 엑스박스
(yn) = 검지와 중지

 



46. 윈도우즈의 보기 설정을 한결같이


파일 목록을 특정한 방식, 예를 들어 ‘큰 아이콘’으로 표시하거나 ‘자세한 정보’와 함께 표시할 때, 모든 폴더의 보기 옵션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두루 적용할 수가 있다. 윈도우즈 탐색기의 ‘도구’ 메뉴에서 ‘폴더 옵션’을 고른다. ‘보기’ 탭의 ‘폴더 보기’ 칸에서 ‘모든 폴더에 적용’ 버튼을 누른 다음 ‘폴더 보기’ 창이 열리고 모든 폴더에 적용할 것인지 물으면 ‘예’ 버튼을 누른다.

 


다른 폴더에서도 보기 옵션을 일일이 정하지 않아도 된다.

 

 

 


47. 드라이브 순서 바꾸기


윈도우즈 98 제어판에서 바꿀 수 있던 ‘드라이브 순서’가 윈도우즈 XP에는 없다. 하지만 꼭꼭 숨겨져 있을 뿐 바꾸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시작 → 실행 → diskmgmt.msc를 치면 ‘디스크 관리’가 뜬다. 바꿀 드라이브를 누르고 오른쪽 단추로 메뉴를 불러온 다음 ‘드라이브 문자 및 경로 변경’을 누르면 된다. 가상 드라이브와 CD롬이 뒤죽박죽일 때 이 곳에서 순서를 바꿔 정리할 수 있다.

 


운영체제가 깔린 드라이브는 바꿀 수 없다.

 

 


48.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 9 지우기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 9는 영화를 보기에 좋지만, 실시간 방송이 뜨지 않는 일이 종종 있다. 이것은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 9가 실시간 서비스인 VOD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해서다. 이런 이유로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 9를 지우고 종전 버전으로 돌리려면 시작 → 실행 → RunDll32 advpack.dll,LaunchINFSection %SystemRoot%\INF\wmp.inf,Uninstall이라고 치면 된다.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 9를 깔기 전으로 돌릴 수 있다.

 

 


49. 누가 내 PC 만졌어!


내 PC가 언제 켜졌는지 남이 내 PC를 만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작 → 프로그램 → 보조프로그램의 메모장에서 다음과 같이 써 넣자.
@echo off
echo Windows 부팅 >>c:\list.txt
echo %date% %time% >>c:\list.txt
echo. >>c:\list.txt
파일 이름을 list.bat라고 저장한 뒤 저장한 파일을 시작 프로그램에 놓는다.

 


c 드라이브에 들어가 list.tct 파일을 보면 PC를 켠 흔적이 남아있다.

 

 

 


50. 깔지마! 깔지 말란 말야!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바탕 화면에 깔리는 아이콘을 일일이 지우는 것도 지겹다. 웹 사이트 아이콘을 바탕화면에 깔지 못하게 해보자. 제어판 → 인터넷 옵션 → 보안에서 ‘웹 컨텐트 영역’을 ‘인터넷’으로 고른다. ‘사용자 지정 수준’을 누른다. ‘바탕 화면 항목 설치’를 찾아 ‘설치 안함’을 고르면 된다.

 


이제 바탕화면에 웹 사이트 아이콘이 깔리지 않는다.

 

 

 


51. 머리글과 바닥글 없애기


인터넷 화면을 문서로 뽑으려면 파일 메뉴의 ‘인쇄’를 누르면 된다. 하지만 프린터에 http://www.ilovepc.co.kr/record_detail_read.php?NO=15879같은 경로가 같이 찍혀 나와 지저분하다. 이것이 싫으면 파일 → 페이지 설정을 눌러 ‘머리글’과 ‘바닥글’에 있는 칸을 깨끗이 지운다음 인쇄하면 된다.

 


'&w&b페이지 &p / &P'라는 부분을 지우면 된다.

 

 

 


52. 키보드 없이 키보드를 친다?


윈도우즈 XP는 키보드가 없이 PC를 쉽게 쓸 수 있도록 ‘화상 키보드’를 지녔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키보드 모양을 화면에 띄워 마우스로 눌러 글자를 띄우거나 프로그램을 실행시킨다. 시작 → 프로그램 → 보조프로그램 → 내게 필요한 옵션 → 화상 키보드를 누르면 된다.

 


화상 키보드는 움직임이 불편한 장애자들을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53. 플로피디스크 읽지 마!


부팅한 뒤나 탐색기를 띄웠을 때 윈도우즈는 무작정 A 드라이브인 플로피디스크를 읽는다. 이것은 하드웨어가 잘 달려 있는지를 윈도우즈가 알아보는 것이다. 이런 일을 없애도 윈도우즈를 쓰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으므로 윈도우즈가 하드웨어를 검색하는 명령을 고치자. 제어판을 띄워 ‘관리도구’를 열고 ‘서비스’ 아이콘을 골라 shell hardware detection 항목을 두 번 누른다. ‘시작 유형’을 ‘자동’으로 맞추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서비스’ 창에서 shell hardware detection 항목을 골라 시작 유형을 ‘자동’으로 바꾼다. 이렇게 하면 플로피디스크를 읽지 않는다.

 


플로피 디스크를 자주 쓰지 않는다면 ‘자동’으로 바꾸자.

 

 

 


54. 최대 절전 모드 해제로 하드디스크 용량을 확보하자


제어판의 ‘전원 옵션’ 가운데 최대 절전 모드를 쓰면 윈도우즈는 얼마 뒤 메모리에 담긴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고 적은 전기만 쓰면서 대기모드로 들어간다. 이 때 하드디스크 용량을 500MB 정도 차지한다. 대기모드를 쓰지 않는 이에게 이 옵션은 하드디스크 용량만 잡아먹는 쓸데없는 것이다. 바탕화면에 대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속성’을 눌러 ‘디스플레이 등록정보’ 창을 띄운다. 화면보호기 항목에서 ‘전원’ 버튼을 누르고 전원 옵션 등록정보를 보자. ‘최대 절전 모드’ 탭에서 체크 표시를 없앤다.

 


55. 응답이 없는 프로그램 빨리 닫기


윈도우 XP 응답이 없는 프로그램은 시간이 얼마 지나야 닫히게 된다. 기다린다고 응답 없는 프로그램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므로 이 시간을 무시하고 바로 끄자. 시작 → 실행에서 regedit 라고 쓰고 엔터키를 치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URRENT_USER\Control Panel\Desktop에서 HungAppTimeout를 왼쪽 마우스로 두 번 눌러 1000으로 고치면 된다.

 


56. 내가 쓰는 윈도우즈 XP가 정품일까?


윈도우즈 XP는 불법 복제를 쓰지 못하게 인터넷으로 정품 등록을 한다. 이것을 흔히 ‘인증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인증을 받지 않고도 정품처럼 쓰는 불법 OS가 널리 퍼져 있다. 정품인데도 인증을 받지 않으면 적어도 30일 동안 작동한다. 과연 내가 쓰는 윈도우즈 XP는 인증을 받은 것일까? 시작 → 실행 → oobe/msoobe /a라고 치면 인증 창이 뜬다.

 


정상적인 OS이면 그림처럼 인증을 받았다는 메시지가 보인다.

 

 

 


57. MSN 메신저를 지우자


프로그램 추가/제거에서는 MSN 메신저를 지울 수 없다. 지우고 싶다면 시작 → 프로그램 → 보조프로그램에 있는 메모장으로 c:\windows\servicepackfiles\sysoc.inf 파일을 연다. msmsgs=msgrocm.dll,OcEntry,msmsgs.inf,hide,7이라고 되어 있는 줄을 찾은 뒤, msmsgs=msgrocm.dll,OcEntry,msmsgs.inf,7로 바꿔주면 시작 → 제어판 → 프로그램 추가/제거 → windows 구성요소 추가/제거에 MSN 메신저 체크박스가 뜬다. 이 박스를 끄면 MSN 메신저를 지울 수 있다.

 


MSN 메신저를 쓰지 않는다면 이 곳에서 지우면 된다.

 

 

 


58. L2 캐시 매만져 PC를 재빨리 돌리자


윈도우즈 XP는 CPU의 L2 캐시를 알아채 PC를 재빨리 돌린다. 하지만 데이터가 많아지거나 멀티태스킹을 할 때 캐시를 읽지 못해 순간적으로 느려질 때가 있다. 캐시를 고정시켜 운영체제가 일일이 캐시 메모리를 찾는 수고를 덜어주자.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KEY_LOCAL_MACHINE\SYSTEM\CurrentControlSet\Control\SessionManager\Memory Management를 찾은 뒤 SecondLevelDataCache를 고른다.
그 다음 내 CPU에 맞는 캐시를 넣으면 된다. 바탕화면에 있는 ‘내 컴퓨터’를 누른 뒤 오른쪽 메뉴를 불러와 ‘속성’을 누르면 내 CPU 정보가 뜬다.

 


10진수로 바꾼 뒤 캐시를 써 넣으면 된다.

 

 

 


59. 다이렉트 X의 최신 버전 깔기


시작 → 실행에서 dxdiag라 쳐 넣고 엔터를 치면 다이렉트 X 버전 뿐 아니라 갖가지 정보가 뜬다. 다이렉트 X가 8.1 이하가 깔려있다면 9.0을 새로 까는 것이 좋다. 게임속도가 재빨라지기 때문이다. 다이렉트 X 9.0을 내려받고 싶다면 시작 → windows update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 창이 뜨면 ‘업데이트 검색’을 누른 다음 중요 업데이트 및 서비스 → 업데이트 검토 및 설치를 눌러 ‘지금 설치’를 누르면 된다.

 


다이렉트 X 9.0이상이 깔려있는지 확인하자.

 

 

 


60.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전체 화면으로 보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전체 화면으로 시원시원하게 보는 방법이 있다.
인터넷 창을 띄우고 F11 키를 눌러도 되지만 항상 전체 화면으로 띄우려면 레지스트리를 매만져야 한다. 시작 → 실행 → regedit 라고 누르면 레지스트리 편집기가 뜬다.
HKEY_CURRENT_USER\Software\Microsoft\Internet Explorer\Main 으로 간 다음 오른쪽 창에서 FullScreen을 찾는다.
FullScreen을 두 번 눌러 no를 yes로 바꾸면 된다.

 

 


2004/06/29 20:03 2004/06/29 20:03

거지와 갑부

 

로스차일드 남작은 유명한 대부호로 로스차일드가를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많은 자식들을 두었으며 그 아들 하나씩을 유럽의 수도에 살게 하여

로스차일드가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놓았다.

   어느 날, 이 로스차일드 남작이 베를린의 거리를 걷고 있는데,

한 걸인이 한쪽 손에 빈 깡통을 들고 나타났다.

  " 로스차일드 남작님! 한 푼 보태주십시오!"

  로스 차일드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지갑에서 소액 지폐 몇 장을 꺼내 가지고 걸인에게 주었다.

  그러자 걸인은 말했다.

  " 로스차일드 남작님! 지난 번 아드님께서는 배나 더 주셨는데요."

  그러자 로스차일드 남작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 아들에게는 돈 많은 아버지가 있지만,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돈 많은 아버지가 없어서 말야."

 


2004/06/29 19:57 2004/06/29 19:57

명답




 

옛날, 어느 나라에 왕에게 여러해 동안 시중들고 있던 피에로가 있었다.

 그러나 이 피에로는 어느 날 궁전에서 어찌된 일이 었던지 왕을 화나게 만들었다.

 왕은 피에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 피에로는 왕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궁전에서

일을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왕은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 나도 자비심이 깊느니라. 내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확실히 나를 웃기려고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겠노라.

너는 어떻게 죽었으면 좋겠느냐? 네 소원대로 죽는 방법을 택하도록 하라."

 왕은 왕좌의 옆에 있는 자그마한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고

 " 이 모래가 다 흘러내릴 때까지 생각해서 대답토록 하라." 고 말했다.

 피에로는 모래 시계가 마지막 다 흘러내릴 때까지 줄곧 아무 말 없었다.

 그리고 최후의 모래가 밑의 유리 상자 속에 떨어지자 왕은 물었다.

 " 자 , 이제 마음은 결정되었는가?"

 

 

 " 예 , 정해졌습니다. 나는 노쇠해서 자연사하는 방법을 희망합니다."

 

 


2004/06/28 19:52 2004/06/2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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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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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요즘 생각할게 많아~~

진학문제도 그렇고 ~~

 

 


2004/06/28 19:50 2004/06/2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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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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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8 19:48 2004/06/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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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은 나의 힘





 

 


2004/06/23 19:47 2004/06/23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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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가면서

   


  <나의 모교>

 

오늘 주민등록증을 찾으러 동사무서에 들려다 학교에 왔다...

동사무소 옆 초등학교에서 쉬는시간 종소리가 들리더군...

 

생각해보니... 대학와서 없어서 섭섭했던 거 중 하나가 쉬는 시간 종소리다...

대학에서는 종을 치지 않으니 끝나는 시간이 교수님 맘이다 -_-;;

그래도 시간을 잘 지키시는 교수님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교수님은 소중한 우리들의 쉬는 시간을 강의에 투자하게 만든다...

 

특히 역학 교수님 안교수님은 늦게 끝내주시기로 유명하다...

교수님은 수업 시간이 끝나면 넘었다고 말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교수님이 열강을 하고 계신데...

누가 교수님께 수업시간 끝났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가~  -_-;;;

하지만 몇몇 선배들은

"지금 몇시야?"  하고 옆에 앉은 친구에게 물어본다...

"어... 지금 53분인데~~  ㅡ_ㅡ;;; "  교수님도 들리게끔 대답을 하곤 한다...ㅋㅋ

 

대학에는 왜 종소리가 없는지 참 궁굼하네...

할튼 올만에 종소리를 들으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2004/06/23 19:38 2004/06/2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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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출처 : yudau`s cafe

 



Courtesy of The Archives,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Richard Feynman's parents were Melville Feynman and Lucille Phillips. Melville was born into a Jewish family in Minsk, Belarus, and emigrated with his parents to the United States when he was five years old. He was a business man who tried, not too successfully, many different types of business. It is clear that his talents were not in business but rather in science which was the subject that fascinated him but he never had the opportunity to make a career from it. Lucille Phillips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into a Jewish family. Lucille's father had emigrated from Poland and her mother also came from a family of Polish immigrants. She trained as a primary school teacher but married Melville in 1917 before taking up a profession.

After their marriage Lucille and Melville Feynman moved into a Manhattan apartment and, in the following year, their first child Richard was born. Melville wanted his first child to be a son and he also wanted him to become a scientist so, overjoyed when he got the son he wanted, he did all he could to interest Richard in science throughout his childhood. Gleick writes [6]:-

Melville's gift to the family was knowledge and seriousness. Humour and storytelling came from Lucille.

Tragedy struck the family when Richard was five years old for Lucille and Melville had a second son who died when four weeks old. It meant that a sadness fell over the household which must have greatly affected the young Richard. After this, he remained an only child until his sister Joan was born when he was nine years old. The family moved several times during these years but when Richard was ten they settled in Far Rockaway.

Richard, or Ritty as his friends called him, learnt a great deal of science from Encyclopaedia Britannica and taught himself elementary mathematics before he encountered it at school. He also set up a laboratory in his room at home where he experimented with electricity. In particular he wired circuits with light bulbs, he invented a burglar alarm, and he took radios apart to repair damaged circuits. When he entered Far Rockaway High School his interests were almost entirely mathematics and science. He found little liking for arts type subjects at this time [4]:-

I always worried about being a sissy; I didn't want to be too delicate. To me, no real man ever paid any attention to poetry and such things.

At school Feynman approached mathematics in a highly unconventional way. Basically he enjoyed recreational mathematics from which he derived a large amount of pleasure. He studied a lot of mathematics in his own time including trigonometry, differential and integral calculus, and complex numbers long before he met these topics in his formal education. Realising the importance of mathematical notation, he invented his own notation for sin, cos, tan, f(x) etc. which he thought was much better than the standard notation. However, when a friend asked him to explain a piece of mathematics, he suddenly realised that notation could not be a personal matter since one needed it to communicate. He really enjoyed mathematics competitions and was a real star in his school. In his final year at Far Rockaway High School he won the New York University Math Championship.

After leaving school he applied to several universities to study there. One would have expected every university to which he applied would enthusiastically offer him a place but it was not that easy. Although his grades in mathematics and science were outstanding, he had performed much less well in other subjects. There was also the "problem" that he was a Jew, which really was a problem in the United States at this time with universities having quotas on the number of Jews they admitted. He sat an entrance examination for Columbia University and they turned him down. He never quite forgave them for charging him 15 dollars and then rejecting him. He was accepted, however, by the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He entered MIT in 1935 and, after four years study, obtained his B.Sc. in 1939. He went there to study mathematics but, although he found the courses easy, he became increasingly worried by the abstraction and lack of applications which characterised the course at this time. He read Eddington's Mathematical Theory of Relativity while in his first year of studies and felt that this was what he wanted from mathematics. His mathematics lecturers presented him with the view that one did mathematics for its own sake so Feynman changed courses, taking electrical engineering. Very quickly he changed again, this time moving into physics. It is interesting to think that had Feynman taken the mathematics course at Cambridge which Hoyle took around the same time, he would have found it exactly what he wanted.

The physics course that Feynman took at MIT was not the standard one. He took Introduction to Theoretical Physics, a class intended for graduate students, in his second year. There was no course on quantum mechanics, a topic that Feynman was very keen to study, so together with a fellow undergraduate, T A Welton, he began to read the available texts in the spring of 1936. Returning to their respective homes in the summer of 1936 the two exchanged a series of remarkable letters as they tried to develop a version of space-time where (quoted from one of the letters - see [6]):-

... electrical phenomena [are] a result of the metric of a space in the same way that gravitational phenomena are.

By 1937 Feynman was reading Dirac's The principles of quantum mechanics and seeing how his highly original ideas fitted into Dirac's approach. In fact Dirac became the scientist who Feynman most respected throughout his life.

We mentioned above that Feynman went home for his vacations. In fact he applied for summer jobs at the Bell Telephone Laboratories every summer but was always refused a position there despite the highest recommendations. Although it can never be proved, there seems no other reason that he would be turned down other than that he was Jewish.

As he approached the end of his remarkable four undergraduate years at MIT he began to think about studying for his doctorate. Since he had been so happy at MIT and also believing it to be the leading institution, he approached the head of physics, John Slater, requesting that he stay on to take a Ph.D. course. Slater told him that for his own good he had to move and he suggested Princeton.

Despite the personal recommendation that Harry Smyth at Princeton received from Slater, it was not obvious that Feynman would be accepted. He had the best grades in physics and mathematics that anyone had seen, but on the other hand he was close to the bottom in history, literature and fine arts. He had one other thing going against him - namely that he was Jewish. Smyth wrote:-

Is Feynman Jewish? We have no definite rule against Jews but have to keep their proportion in our department reasonably small because of the difficulty of placing them.

After further letters from Slater, Feynman was accepted by Princeton. His doctoral work at Princeton was supervised by John Wheeler, and after finding the first problem that Wheeler gave him rather intractable, he went back to ideas he had thought about while at MIT. The first seminar that he gave at Princeton was to an audience which included Einstein, Pauli and von Neumann. Pauli said at the end [4]:-

I do not think this theory can be right ...

In retrospect, Feynman thought that Pauli must have seen difficulties at once, for after Feynman had spent a long time working on it, he too thought that it was not satisfactory. However, he then went on to develop a new approach to quantum mechanics using the principle of least action. He replaced the wave model of electromagnetics of Maxwell with a model based on particle interactions mapped into space-time. Gleick writes [6]:-

This was Richard Feynman nearing the crest of his powers. At twenty-three ... there was no physicist on earth who could match his exuberant command over the native materials of theoretical science. It was not just a facility at mathematics (though it had become clear ... that the mathematical machinery emerging from the Wheeler-Feynman collaboration was beyond Wheeler's own ability). Feynman seemed to possess a frightening ease with the substance behind the equations, like Einstein at the same age, like the Soviet physicist Lev Landau - but few others.

He received his doctorate from Princeton in 1942 but before this time the United States had entered World War II.

Feynman worked on the atomic bomb project at Princeton University (1941-42) and then at Los Alamos (1943-45). When he was approached during his final year of research to take part in the project his first reaction had been a very definite no since he was entering the final stages of work for his thesis at the time [4]:-

... I went back to my thesis - for about three minutes. Then I began to pace the floor and think about the thing. The Germans had Hitler and the possibility of developing an atomic bomb was obvious, and the possibility that they would develop it before we did was very much of a fright.

Feynman began work on the Manhattan project at Princeton developing a theory of how to separate Uranium 235 from Uranium 238, while his thesis supervisor Wheeler went to Chicago to work with Fermi on the first nuclear reactor. Wigner, in Wheeler's absence, advised Feynman to write up his thesis and after Wheeler and Wigner examined the work he received his doctorate in June 1942.

Feynman had a difficult personal problem at this time. His girlfriend of many years, Arlene Greenbaum, had been diagnosed as having tuberculosis and his family opposed their marriage. Shortly after he was awarded his doctorate Feynman married Arlene with no family members present. Shortly after his marriage Feynman went to the newly constructed Los Alamos site to work on the atomic bomb project. His remarkable abilities soon led to him being appointed as head of the theoretical division. Arlene died in 1945 just before the first test of the bomb. Feynman would marry twice more and have two children with his third wife.

After World War II, in the autumn of 1945, Feynman was appointed as a professor of theoretical physics at Cornell University. At first he devoted himself to teaching and put his research aside. The pressure of the work at Los Alamos, together with the personal stress of watching his wife's health decline, had taken its toll. He wrote [4]:-

If you're teaching a class, you can think about the elementary things that you know very well. These things are kind of fun and delightful. It doesn't do any harm to think them over again. Is there a better way to present them? The elementary things are easy to think about; if you can't think of a new thought, no harm done; what you thought about it before is good enough for the class. If you do think of something new, you're rather pleased that you have a new way of looking at it.

He received offers of posts at other universities but felt that as a non-researcher he could not even consider them. Suddenly the desire to undertake research hit him again and he returned to the quantum theory of electrodynamics that he was working on before World War II.

In 1950 Feynman accepted a position as professor of theoretical physics at th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Since he had already planned a sabbatical leave before receiving the offer, he was able to arrange to spend the first ten months of his new appointment in Brazil. He remained at Cal tech for the rest of his career, being appointed Richard Chace Tolman Professor of Theoretical Physics there in 1959.

Feynman's main contribution was to quantum mechanics, following on from the work of his doctoral thesis. He introduced diagrams (now called Feynman diagrams) that are graphic analogues of the mathematical expressions needed to describe the behaviour of systems of interacting particles. He was awarded the Nobel Prize in 1965, jointly with Schwinger and Tomonoga:-

... for fundamental work in quantum electrodynamics, with deep-ploughing consequences for the physics of elementary particles.

Other work on particle spin and the theory of 'partons' which led to the current theory of quarks were fundamental in pushing forward an understanding of particle physics.

In early 1979 Feyman's health had deteriorated and he had surgery for stomach cancer. This was very successful and his doctors believed that he would not suffer a recurrence. After his recovery he enjoyed the limelight as a famous public figure, a role which was enhanced when the book [4] became a surprise best seller. His final major task was as a member of a committee set up to investigate the cause of the explosion on the space shuttle Challenger on Tuesday 28 January 1986. The fascinating story of the science and politics of this investigation is told in Feyman's own words in [5]. It was a very difficult time for Feyman since throughout the investigation his health was deteriorating. Near the end of 1987 cancer was found again in his abdomen. After his death, Chandler wrote on 17 February 1988 in [17]:-

Feynman, who died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 Medical Center after an eight-year battle with abdominal cancer, was a popular and energetic lecturer who, despite his illness, continued to teach at th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until two weeks ago.

Feynman's books include many outstanding ones which evolved out of lecture courses. For example Quantum Electrodynamics (1961) and The Theory of Fundamental Processes (1961),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1963-65) (3 volumes), The Character of Physical Law (1965) and QED: The Strange Theory of Light and Matter (1985).

In [6] Gleick described Feynman's approach to science:-

So many of his witnesses observed the utter freedom of his flights of thought, yet when Feynman talked about his own methods not freedom but constraint ... For Feynman the essence of scientific imagination was a powerful and almost painful rule. What scientists create must match reality. It must match what is already known. Scientific creativity, he said, is imagination in a straitjacket ... The rules of harmonic progression made for Mozart a cage as unyielding as the sonnet did for Shakespeare. As unyielding and as liberating - for later critics found the creator's genius in the counterpoint of structure and freedom, rigour and inventiveness.

Feynman received many honours for his work. He was elected to the American Physical Society,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and the Royal Society of London. Among the awards he received were the Albert Einstein Award (1954), the Einstein Award, and the Lawrence Award (1962).

As to Feynman's character, he was described in [17] as follows:-

He was widely known for his insatiable curiosity, gentle wit, brilliant mind and playful temperament.

Gleick [6] describes him as:-

... mystifyingly brilliant at calculating, strangely ignorant of the literature, passionate.

Article by: J J O'Connor and E F Robert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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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Archives,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2004/06/20 19:35 2004/06/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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