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요기

실패의 전쟁사 ‘쓰시마 해전’

 
100여 년 전 대한 해협에서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대비돼 실패학의 좋은 사례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세계 5대 해전의 하나로 꼽히는 쓰시마 해전이 그것이다.

이 전투의 승자인 도고 헤이하치로는 ‘일본의 넬슨’이라 불리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의 숭배를 받고 있고, 그의 기함이었던 전함 미카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군함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 승자를 칭송하는 무수한 사료들과 달리 ‘짜르의 마지막 함대’는 당시 패자였던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와 그 사령관이었던 로제스트벤스키를 다루고 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제 아무리 뛰어난 지휘관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영향 때문에 전쟁에서 패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국가(또는 국가원수)의 오판이나 무능한 참모진, 정보의 부재, 상대에 비해 뒤떨어지는 무기 체계, 피로 누적 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쓰시마 해전에서의 로제스트벤스키는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불행을 한꺼번에 겪어야 했던 지휘관이다.

사실 기적에 가까운 대원정이자 역사상 최악의 원정 중 하나로 꼽힐 만한 러시아 함대의 이동은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의 일본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차르의 고집으로 부대가 편성되다 보니 지휘관의 전술에 의해 유동적이어야 할 함대의 구성은 불합리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결국 비교적 최신형 군함으로 구성된 일본 해군과 달리 러시아 해군의 항해는 신형 함정과 구식 함정이 뒤섞여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또 러시아의 항로는 일본의 동맹인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본국으로 연락하기 위해 영국의 전신망을 이용해야만 했고 해외 정보원들이 수집한 정보도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패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조건은 불행하게도 러시아 함대의 몫이었다.

성질이 좀 급하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유능한 지휘관이었던 로제스트벤스키가 왜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은 담담하지만 흥미롭게 그 시대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거함(巨艦)·거포(巨砲) 시대의 산물인 거대한 전함과 함대 결전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도 그렇지만 2만 마일 항해 중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기상에서부터 식사 모습, 일과 진행, 당직 제도에 이르는 당시 해군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는 미시(微視)적 재미도 이 책의 흥밋거리다.

100여 년 전 해군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는 역시 해군인 우리에게만 주어지는 또 하나의 보너스일 것이다.

〈중위 신유식 해군인천해역방어사령부〉 2005.02.22